farewell
2024/8/12원래 터프스튜디오는
“이 창고에 가득찬 물건을 가치있는 것으로 바꾸자” 라는
미션으로 시작되었다.
카페를 300개 이상 만들 포부로
빈티지 의자를 창고 천장에 닿을 정도로 가득가득 쌓은 우리 아버지
(그 외에도 말로 담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꽉꽉 채워져있었다)
아버지는 한 때 “의자왕”으로 유세윤 님이 호스트 하던 라디오 쇼에 출연하기도 하셨다.
남들이 보기엔 매력있고, 스토리있고, 흥분되는 이 상황이
왜 나에게는 스트레스이자 무거운 짐이고 어찌 할 바를 모르는 큰 물음표 였을까?
원래 우리의 계획도 실제로 카페 300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미 2개의 레스토랑/카페를 운영하던 우리 부부에게
창고의 물건들을 다 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솔루션이었다.
2017년, 이 계획을 3개월 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
12월 말, 군산에 있는 커피공장으로 미팅을 가게 되었다.
일정을 마치고 올라오는 길에 핵심멤버 5명을 태운 카니발이 눈길에 미끌어졌고,
폐차가 될 정도의 큰 사고가 났다.
다행히 누구도 뼈 하나 부러지는 일 없이 타박상 정도로 끝났지만,
야심차게 준비하던 모든 과정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고 후 치료를 같이 받으러 다니면서 어쩌다보니
2018년 새해 시작과 함께 준우와 지우가 우리집에서 함께 합숙을 하게 되었다.
이 합숙은 참 예사롭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사장과 직원 사이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벽이 있었는데
몸이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모두가 마음을 열고
여태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이 합숙 중, 우리 모두에게 카페프랜차이즈 플랜을 내려놓고
“컨텐츠”를 해보자는 동일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중 한명도 컨텐츠 쪽 일을 해본적이 없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왜 이 단어가 우리 모두에게 다가왔는지 미스테리다.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창고였고
우리에게 있는 가장 재밌는 컨텐츠도 창고였다.
‘창고를 브랜딩 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기록하면 그게 우리의 컨텐츠가 아닐까요?’
라고 준우가 말했다.
아무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막상 그것을 어떻게 해야할 지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가장 처음 한 일은 창고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분류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손을 댈 수 없는 물건,
고치는 가격이 더 드는 물건,
아무리 생각해도 팔 수 없는 것들을 다 모았다.
그리고 당시 젊었던 우리가 좋아하는 물건들
그리고 그 당시 트렌드에 적합한 물건들을 분류했다.
그리고 그 중간 쯤 가는 물건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X, O, ▵ : 이렇게 세가지로 크게 분류를 마치고는
한개 한개 숫자를 세며 재고를 파악했다.
의류편집샵을 처음부터 만들어 본 준우가 가진 MD적인 시야로
창고를 조금씩 조금씩 바꾸어갔다.
너무 추운 2월에 왜 시작을 한걸까.
‘가장 좋은 시기는 없고 그냥 지금 나아가는 것 밖에는 없다’.
서서히 혼란의 창고에서 질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O에 포함된 가구들을 모아보니
남성적이며 선이 굵고 실용적인 인더스트리얼한 것들이었고
60-70년대 요즘 흔히 말하는 미드센츄리 가구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터프라는 이름과 너무 궁합이 잘 맞았고
그 이름으로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창고 가운데에 촬영 할 장소를 마련하고 흰색으로 벽과 바닥을 칠하고
스튜디오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준우가 가구를 하나 하나 사랑으로 찍었다.
그 다음은 복원이었다.
너무나 많은 재고가 있었기에 상태가 좋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때를 벗기며 연구하고
복원전문 실장님 밑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실력이 늘었다.
유튜브도 많이 보고 재료 및 공구들도 이것 저것 시도해보면서
우리의 스튜디오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바잉이 아닌 나와 준우가 중심이 된 바잉도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콜렉션 위에 우리들의 콜렉션이 얹어져서
묘한 신구조화를 이루기 시작했고 그게 터프스튜디오의 첫 모습이다.
머리만 쓰는 것보다 손으로도 일하고,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실제로 만져보고,
또 창의적으로 복원 솔루션을 찾아내는 일이 참 즐겁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지만
그 어떤 일보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 신기했다.
무엇보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글로 적으면서 모인 블로그가
마치 사명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제 2024년. 벌써 7년이 지났다.
100개가 넘는 블로그에 나와 있듯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길었던 코로나도 지나갔다.
(카페프랜차이즈했으면 시작도 못하고 망하지 않았을까?)
빈티지가구는 그 기간동안 엄청난 유행이 되었고
우리는 드디어 창고에서 우리가 팔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팔고 나오게 되었다.
대학졸업 후 이렇게 가벼워 졌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날아 갈 것만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곳에서 피, 땀, 눈물을 흘렸던 우리의 젊음이
이곳에 가득 차 여운이 맴돈다.
실제로 창고의 가득찬 물건은 가치있는 것으로 변했다.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같은 팀을 얻었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실제로 해냈다는 큰 경험과 자신감을 얻었고,
좌충우돌 완벽하진 않았던 한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기록한 컨텐츠가 남았다.
미션 컴플리트!
창고야 안녕!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