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터기

2023/7/24


2년 동안 운영하던 레스토랑이 드디어 잘 정리되었다.
어떻게 창고와 마지막으로 이별한 시점과
12년 동안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정리한 시점이 같을 수가 있을까.
참 운명이라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2011년 9월 처음으로 레스토랑을 열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2010년 겨울 처음으로 아버지가
여태까지 모은 대규모 빈티지 가구 콜렉션에 대해 커밍아웃을 했다.
레스토랑 사업의 확장을 위해 잠시 도우려고 한 것이





일을 시작한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 두분의 건강이 갑자기 안좋아졌다.
가장이 된 것 처럼 모든 것에 책임을 지며 나아가야 했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지만 마음에 힘을 잔뜩 줬던 것이 생각난다.

아내는 결혼 전 뉴욕에서의 음악 커리어를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사업을 버거워하는 나를 돕기 위해서 였다.
그렇게 우리는 합숙같은 신혼생활을 하며
스트레스 성 폭식으로 각각 20kg 씩 살이 쪘다.
위기가 아니었던 순간이 있었던가.
한 위기를 넘기면 또 그 다음 위기가 오고 맘 편히 쉬는 날 없이 달려왔다.
비지니스도 가정생활도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와 아내는 최선을 다해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같이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쉽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컨셉만 가지고 마음만 앞서서 했던 어리석은 결정들
그리고 책임을 지는 것이 뭔지 모르고 보였던 연약하고 안일했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그래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준 직원들과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가 시작한 비지니스들이 우리 세대로 넘어와
어떤 모습으로든 잘 정리가 되어서 정말 감사하다.
부모님 두 분의 건강은 잘 회복되었고
현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아직도 일을 하고 계신다.
그 어느 때보다 온전한 모습으로 회복된 두 분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막상 그 중심에 있을 때는 폭풍 같았고 몰아칠 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잔잔해지고 흙탕물이 가라앉으니 진짜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다.


PAUSE

일의 관성이 우리를 이끌어가지 않도록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미지는 그루터기다.
이 상황과 내 마음을 잘 대변하는 것 깉다.
나무가 잘라지면 위로는 더 이상 뭐가 없다.
남아 있는 것은 땅에 깊숙히 박혀있는 뿌리들과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면이다.

레스토랑 비지니스를 하면서 배운 것들, 느낀 것들은
우리 존재 깊은 곳에 뿌리내려서 자리잡았다.
근데 잘려진 면을 보면 안타까움이 올라온다.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더 큰 나무가 될 수 있었을텐데… 라는 후회가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는 확고한 끝맺음을 직면해야한다.

이 잘린 단면을 보면서
내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단면을 잘 보면 매년매년 성장한 흔적이 나이테로 남아 있다.
나이테를 잘 하나씩 짚어보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내 뿐 아니라 젊음을 같이 보낸 귀한 직원들과
우리를 사랑해 주신 고객들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그냥 감사하다.
전부 다.

It was really worth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