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tical Time

2020/5/26


none을 준비하는 시즌에 많은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같이 하고 싶은 브랜드, 사람, 또는 팔고 싶은 물건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아직 뭘 할지 정해지지 않아서 자유롭게 찔러보는 시기였다. 그 때 병윤이와 나의 리스트에 있었던 곳이 NR CERAMICS 였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봐두던 곳이라는게 인상깊어서 기억에 킵 해두었다. 이 브랜드/스튜디오가 좋았던 이유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양의 오브제들 이었다. 실용성이 없어서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과감하게 시도하는 작가적 정신이 강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과감한 시도에서 머무르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무드를 정확히 표현하고 소개해주어서 소비자로서 어느새 설득되어지는 부분이 좋았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 none도 두번째 판화전시를 하고 있을 때 NR CERAMICS의 이누리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다. 새로운 tableware 라인을 런칭하는데 공간이 마음에 드셔서 사진촬영이 가능한지 물어보셨다. 우리에겐 이것이 또 하나의 싸인이라고 생각했다. none이 나아가는데 있어서 필연적인 만남(?)이 일어났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그냥 일단 미팅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보면 뭔가 풀리는게 있지 않을까. 

만남의 시간이 정말 좋았다. 이미 가지고 계신 영향력과 커리어에 맞지 않게, 외부미팅 경험이 많이 없다고 하셔서 놀랐다. 그냥 본인의 작업을 꾸준히 조용히 하시는 분이셨고, 스튜디오가 이천에 위치해서 그런지 더 작업에 집중하셨던 것 같다. 우리는 공간렌탈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고 서로 돕고 힘을 합치는 일은 관심이 많다. 그래서 정말 어떤 분인지, 생각이 어떠신지, 꿈이 무엇인지, 성향은 어떠신지 등이 궁금하다. 그리고 일회성인 소비적인 관계를 맺는 것보다 오래갈 수 있는 친구관계를 맺는 것이 난 좋다. 우리가 실례되지만 많은 질문을 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다행히) 너무 좋아하셨고 여태까지 걸어온 길과 앞으로 준비하시는 방향에 대해서 긴 시간 대화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사진촬영이 아닌 2주간의 전시로 바뀌었다. 사진을 위해 만든 scene을 2주 동안 고객들과 오프라인에서 나누는 작은 기획을 해보았다. 이미 가지고 계신 디테일한 art direction이 있었지만 추가로 TUFF의 가구와 우병윤의 그림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프로젝트다.

사진 촬영 전날 서로가 준비한 것들을 조합하고 디스플레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끝나버렸다. 서로의 스타일이 잘 맞았고 또 이해도 높아서 그랬던 것 같다. 순조롭게 슥슥 진행되는 걸 보니 전시가 잘 될 것 같다. 누리 작가님께 많이 배웠다. 프로페셔날한 부분이 정말 멋졌다. 준비의 디테일이 높고 본인의 생각과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알려주셨다. 그래서 더 스무드하게 진행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의지가 멋졌다.

우리의 전시의 이름은 “vertical time”



수직적 시간
바슐라르는 수직성을 가진 ‘순간’이 삶에 깊이와 높이를 부여해주며, 존재를 일반적인 지속성 밖으로 끌어낸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순간’ 속에서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으며 솟아오릅니다. 공간이란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여서 비일상적 계기가 없으면 우리가 의식하거나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도자기와 가구, 페인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시는 사물을 일상적인 기능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우리를 수평적 시간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일상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이곳에서 순간의 관점으로 사물을 보고 양가적인 감정들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누리작가님이 써주신 글이다.

좋지 않은가. 내가 절대 쓸수 없는 글이다. 뭔가 이 만남도 수평적 시간이 아니라 수직적 시간 안에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은 것 같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누리 작가님의 더 깊은 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