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염색

2022/9/6


아들 방에 암막커튼을 달아주기로 했다. 빛을 완전히 차단해주어야 성장에 좋다고 한다. 애기 엄마와 함께 커튼 쇼핑을 갔다. 뭔가 좋은 것이 없을까...동대문 이나 고속터미널에서 제작할 수 있는 천들은 아쉽고...수입 패브릭 업체를 돌아다녀보니 시간도 오래걸리고 가격은 뭐 말할것도 없다.

눈은 높고
돈은 없고

그러다가 최근에 인디고 염색을 해보고 싶다던 혁문형의 말이 생각났다. 형이랑 같이 해봐야겠다. 이런 도전을 해봐야 우리도 나중에 뭐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싸게 (노동력을 녹여서) 좋은 퀄리티의 물건을 만들어 주는 남편이 될 수 있는 기회다.

클라이언트인 와이프를 설득해 예산을 얻어 냈다. 천시장에 가서 광목천을 여유있게 사고인터넷을 뒤져서 천연염료 파는 곳을 찾았다.온라인쇼핑을 할 수도 있었지만 초보자인 우리는 사장님에게 이것 저것을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한 20-30분 거리여서 곧장 달려갔고 1시간 정도 염색 이론 및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해주셨다.역시 그냥 막 찾아가면 항상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이제 실전 돌입!

부글부글 가가멜 처럼 인디고 염료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비율은 영업비밀 (쉿!) 초록 빛이 나면 염색이 된다고 했는데 정말 녹조 처럼 올라온다. ph를 확인하면서 조심스럽게 염색액 제조에 성공.

인터넷으로 여러 패턴도 검색해보고 머리속으로도 몇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 린넨 수건으로 10개 정도 연습을 해보고 색의 진함도 봤다. 역시 새로운 방식에 도전하는 것은 신나고 떨린다. 하나하나 다른 문양이 나올 때 마다 설렘이 느껴진다.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 느낌이다.

우리 클라이언트가 좋아할 모양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좀 더 기하학적인 패턴이 있으면 좋겠다고 결정!

작은 면을 하는 것보다 큰 면을 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액에 닿는 면이 넓어져서 어느정도 스며드는지 알 수가 없다.그리고 염색은 단 한번의 기회. 한 번 망하면 끝이다.그런데 또 우리가 선택한 방식이 내추럴 한 부분이 있다.그러니 굳이 망할 것도 없다. 걍 렛츠고!

차곡차곡 세모모양으로 방석크기로 접어서 대야에 풍덩 담궜다.

이미 벌어진 일.
이제부터는 즐긴다.
(즐길수밖에 없다 하하하하하하)
염색을 끝난 후에는 중성화 작업을 잘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로 계속 주물럭 주물럭.

꾹꾹 짜서 테이블 위에 펼치는데... 와우!
느낌이 아주 좋다. 모양이 적당히 기하학적이고 적당히 내추럴하다.컬러는 아직 더 물빠지는 것을 봐야하기 때문에 뭐라할 수 없지만...

깊다.

그냥 염료와는 다른 그런 깊이가 느껴진다. 천연염료를 쓰는 매력이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혁문형 설명으로는 천연염료는 색이 여러 레이어로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비닐봉지에 담아서 집에 가져갔다. 중성세제를 넣어서 한 번 빨았다. 탈수해서 빨랫대에 널어 놓고 잠에 들었다. 와이프가 '지가 벌인 일은 열심히 하네' 라고 했다. 분명히 칭찬일 것이다.

색이 많이 연해졌다. 더 내추럴 해지고 빈티지 해졌다고나 할까.
광목의 누런색도 전혀 보이지 않고 무슨 제품같았다.

다시 커튼집에 가져가서 뒤에 암막을 데고 완성했다. 아이 방에 걸어 놓으니 있어 보인다. 센스있는 부모가 된 느낌이다.

대만족 프로젝트.

클라이언트도 아주 좋아하고 만드는 시간 내내 행복했다. 물론 아주 복잡하고 힘든 절차였지만, 벌리고 치우고 시간도 많이 들었지만 스튜디오 다운 일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캐리 해준 혁문형에게 영광을 돌린다.